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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가야산(백운동 - 동장대 릿지 - 동성봉 - 칠불릿지 - 칠불봉 - 그리움 릿지 - 심원사)

단지.. 2016. 9. 27. 01:18



합천 가야산(백운동 - 동장대 릿지 - 동성봉 - 칠불릿지 - 칠불봉 - 그리움 릿지 - 심원사)

o 일 시 : 2016. 9. 24()

o 거 리 : 11.2

o 산에 머문 시간 : 10:26(의미없음)

o 날 씨 : 운무와 맑은 날씨

o 누 구 랑 : 남도산사랑

o 교 통 편 : 자가용(지리산 휴게소), 버스(05:00 - 07:10) 2시간 10분 소요

o 산행개요

백운동(07:11) - 동장대(09:19) - 동성재(09:36) - 동성봉(10:13) - 칠불봉(13:50) - 서성재(14:44) - 상아덤, 서장대(14:54) - 사자바위, 그리움릿지(15:40) - 선인장 바위(16:14) - 심원사(17:37)


o 개괄

  - 합천 가야산에 칠불릿지 구간 올 6월달에 한번 가보았던 구간이고 모임도 있어 가야 할지 안가야 할지 고민하다 지리산 휴게소로 향한다.

  - 지리산휴게소에서 산악회 버스를 타고 가서 산행이 끝나면 다시 지리산휴게소에서 내려  방화동 자연휴양림으로 향하기로 하고 가야산의 조금은 이른 가을 풍경을 보러 간다.

  - 드디어 백운동 주차장에 도착한다. 왠지 친근감이 느껴진다. 산행 준비하느냐고 마지막으로 야영장뒤 산행 초입지로 향한다.

  - 먼저 가는 사람들이 예전에 있던 등산로로 향하고 있다. 그 쪽으로도 가면 있는 것 같아 따라 갔는데 다시 되돌아온다. ~ 내가 먼저 초입지를 안내 할건디..

  - 올 6월달에 왔을때는 조금은 더워서 진행하는데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가을이라 별로 힘이 들지 않고 첫 번째 암봉에 도착한다. 모두들 환호한다. 운무와 암릉의 어우러짐이 멋스럽다.

  - 코바위를 거쳐 동성봉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칠불릿다. 어디 설악산에 온 것 같이 암릉과 물들기 시작한 단풍의 풍경이 마음이 사로 잡힌다.

  - 조심스럽게 거친 바위를 지나 칠불봉 정상에 도착한다. 다시 내려와 서성재 그리고 상아덤을 거쳐 그리움릿지 시작능선인 사자바위에 온다. 이곳부터서는 하산시간도 다되고 해서 마음이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까 제대로 못보고 하산하는 데만 집중하게 된다. 한참 정신없이 내려가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바로 내려가는데 난이도 있어 힘이 들었다. 그리움릿지 조금 아쉬움이 있어 다시 기회가 있으면 올라 가봐야 할 듯 하다.

  - 내려와서 간단한 간식후 거창에 가서 목욕하고 삼겹살집에 가서 저녁을 해결한다. 구워먹은 것은 마음에는 내키지는 않는데 어쩔수 없이... 다음에는 나도 된장국으로 먹어야 겠다.

  - 이렇게 산행을 마무리 하고 지리산휴게소에서 하차후 장수에 있는 방화동 자연휴양림으로 백두대간 완주 1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한다.


























































































































































가야산 칠불봉의 전설

가야산은 가야건국 설화를 간직한 해동팔경 또는 영남의 영산으로 옛부터 정견모주라는 산신이 머무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천신 이비하에 감응되어 두 아들을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하여 오고있다.

칠불봉은 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김씨의 시조, 둘째 셋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7왕자는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 후 도를 깨달아 생불이 되었다하며 그 밑에 칠불암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고 있다.

예부터 산신이 머무는 가야산은 그 골이 깊고 수려하며

삼재(旱災, 火災, 兵禍)가 들지 않는 해동영지로 일컬어 온 영산이다.


출 처 : 신증동국여지승람, 한국불교전설 및 불교설화대사전



상아덤 (서장대) - 가야국의 신화가 전해 내려오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아득한 옛날, 가야산에는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正見母主)’란 여신이 살고 있었다.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 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레했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그래서 형은 뇌질주일(惱窒朱日), 아우는 뇌질청예(惱窒靑裔)라 했다.

형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응전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오고 있다.


가야산의 지덕

옛사람들은 숨어 있는 가야산의 진가를 알고 있었다. ‘산형은 천하의 으뜸이고, 지덕은 해동제일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바위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져 마치 불꽃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하여 지극히 높고 수려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감록에서는 도읍지의 기운이 한양을 거쳐 계룡산으로 옮겨가고, 종국에는 가야산으로 들어온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우리 선현들이 산을 유람하는 뜻이 단순히 풍류에서만 그치지 않았음이 정구(鄭逑)가야산기행문에서 뚜렷이 나타나 있다.

유람객의 구경거리가 되는 산의 훌륭한 경치는 인자(仁者)로 하여금 산의 오묘한 생성의 이치를 보고 자성(自省)하게 하는 것이며, 높은 곳에 오르는 뜻은 마음 넓히기를 힘씀이지 안계(眼界)를 넓히기를 위함이 아니다.”라고 적고 있다.


택리지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한다. 살고 있는 곳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이 촌스러워진다.


마애불입상(보물 제222)

해인사 마애불입상(磨崖佛立像)은 가야산 중턱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행주형(行舟形)이라 일컬어지는 해인사의 지형에서 이 중봉의 석불은 선장격으로 여겨져 왔는데 높이가 7m쯤 되는 바위에 불신이 6.5m쯤 새겨져 있고 원두광이 양각으로 뚜렷하게 새겨져 있어 원만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야산의 길

가야산 산길은 해인사를 들머리로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성주군 백운 동을 들머리로 암릉 구간을 오르며 만물상의 바위미를 즐긴 뒤, 칠불봉과 상왕봉을 비교 감상하고 해인사로 내려오는 것이 최상의 코스다. 거리는 약 9, 4시간30분 쯤 걸린다.

가야산 동쪽의 백운동 지구는 가야산성, 옛 금당사(金塘寺)의 여러 암자터 등 문화 유산과 만물상을 비롯한 수려한 암봉들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지역이다. 백운동버스정류장에서 탐방안내소까지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바위 봉우리들이 잘 보이는구간이다.

햇볕 잘 드는 호젓한 계곡을 20분쯤 가면 백운암지이고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20 분쯤 더 오르면 서성재에 도착한다. 서성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상아덤(서장대)을 만날 수있지만, 출입통제 구역이다.

서성재에서 칠불봉으로 오르는 길이 가야산의 핵심 구간이다. 급경사 바위지대가 많지만 위 험 구간에는 철계단이 잘 놓여 있다.

험난함에 비례해 만물상의 멋진 조망이 드러난다. 마지막 철계단과 가파른 로프 구간을 돌파하면 대망의 칠불봉 삼거리에 올라붙는다. 여기서는 먼저 칠불봉에 들렀다가 상왕봉으로 가는 것이 순서다.

칠불봉은 상왕봉과 불과 200m 거리에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상왕봉과 동성재 암릉은 빼어나게 아름답다. 그래서 상왕봉과 칠불봉을 비교 감상하며 어느 곳에 더 후한 점수를 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산꾼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됐다.

칠불봉에서 암봉들을 우회해 안부에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상왕봉의 우람한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서 다시 철계단을 올라야 상왕봉 정상이다.

상왕봉의 조망은 가야산의 축복이다. 왼쪽 멀리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서 있고, 엉덩이 같은 반야봉의 펑퍼짐한 모습도 선명하다.

산줄기를 따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다시 웅장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그곳이 덕유산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잡히는 것이다.


가야산성 伽倻山城

백운동 용기골을 중심으로 석축 산성이다 전장 15935(5) 성고 5(1.5m)으로 상봉에서 우능선으로 축성해져 있고 6계곡 10천이 있다.

가야 부족국 시대부터 축성된 이 산성은 이 곳을 주성으로 하여 동남방향으로 내린 산줄기를 따라 흑산성, 독용산성, 운라산성으로 이어지는 연접산성의 특색이 있다.

4처의 각 성은 약 5거리로 산봉에 위치하고 있고 할미산신의 신당을 모셔 할미산성이라고 한다. 가야산성은 1594(선조 27,갑오년) 승장 신열이 크게 개축해서 문루를 높게하였다.


농산정 籠山亭

농산정은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 있는 정자로 다. 신라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가야산에 머물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한거자적한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 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당나라 유학시절에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란 글을 써서 이름을 떨쳤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전국을 유랑하다 가야산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 농산정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높이 약 3m로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의 팔작지붕 형태로 현재 경주 최씨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최치원이 바둑을 두던 곳碁閣이라고도 하는데, 치원대(致遠臺)로도 불리는 바위에는 최치원의 가야산독서당시가 새겨져 있다.


농산시 籠山詩라 불리는 이 시는 마멸되어, 송시열(宋時烈)의 글씨로 다시 새겨져 있다

첩첩한 돌 사이로 미친 듯 내뿜으며 겹겹한 산을 두드리니, (狂奔疊石吼巒重)

사람의 소리는 지척간에도 분간하기 어렵도다. (人語難分咫尺間 )

세상의 시비하는 소리 들릴까 저어하여, (常恐是非聲到耳)

짐짓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 막았네.”라고 되어 있다. (故敎流水盡籠山)


가야산 海印寺 (해인사)

해인사는 민족의 고귀한 문화 유산인 고려팔만대장경판을 6백년 가까이 보전 법보종찰(法寶宗刹)의 명성을 누리고 삼재불입(三災不入)의 영기(靈氣) 서린 가야산 속에서 자리한다.

해인사는 802(애장왕 3)에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스님이 애장왕의 지원으로 창건하였다.

창건 기록인 가야산해인사고적기 伽倻山海印寺古籍記에 의하면, 순응과 이정은 중국에 가서 보지공(寶誌公) 문하에 불법을 구하였더니, 문도가 지공의 답산기(踏山記)를 주고 아울러 임종시의 말을 전하였다.

두 사람이 지공의 묘소를 찾아가 법을 청하니 수일 후 지공이 나와 설법을 하고 의발(衣鉢)을 전하며 간곡히 이르되, “너희 나라 우두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너희가 환국하여 절을 창립하라.”하는 말을 들었다.

두 스님이 귀국하여 우두산의 동북쪽으로부터 고개를 넘어 서쪽 골에 이르러 보니, 합당한 곳이 있었으므로 풀을 깔고 앉아 수도하였다.

그 때 애장왕후의 등창병을 고쳐주자, 애장왕이 이에 크게 감사하여 먼저 봉서사(鳳棲寺 : 지금의 願堂庵을 말한다 함.)를 세웠다. 그리고 법당과 승료(僧寮) 40여소를 짓고 전지(田地) 25백 결을 하사하였다.

화엄종의 개산조인 의상(義湘)의 법통을 이은 순응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를 인용하여 해인사로 이름하였다.

중요 건물로는 큰 법당인 대적광전과 명부전·삼성각·응진전(應眞殿조사전(祖師殿퇴설당(堆雪堂응향각(凝香閣관음전·궁현당(窮玄堂구광루(九光樓경학원·명월당(明月堂사운당(四雲堂해탈문·국사단(局司壇봉황문·일주문(一柱門) 등이 있다.


가야산 만물상

가야산은 경북 성주와 경남 합천의 경계에 솟아 오른 산으로 정상은 성주의 칠불봉(1,433m)과 합천의 상왕봉(1,430m)입니다. 가야산이란 이름은 옛 가야국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성주의 백운동에서 올라가는 만물상 능선은 1972년 국립공원 지정과 동시에 입산이 통제 되었다가 2010061238년 만에 개방되었습니다.

가야산 트레킹은 만물상 능선으로 정상을 올라 용기골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와 정상에서 해인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습니다.

가야산 만물상 코스는 산행 들머리의 가파른 오르막 나무 숲속을 지나 만물상 능선에 접어들면 시야가 트이며 가야산의 빼어난 절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가야산 만물상 능선은 3km로 바위 사이의 위험한 구간에는 계단 등 안전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으며 코끼리 바위, 두꺼비 바위, 상아덤 등 기묘한 만물의 형상을 한 기암들의 절경은 장관입니다.

기암과 기송들이 함께 어우러진 만물상 능선은 아홉 암릉의 공룡능선으로 아름답습니다.

만물상 능선의 대미이자 백미는 끝에 우뚝 솟은 상아덤(서장대)입니다. 상아덤은 그 자체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뿐만 아니라 전망대로서 만물상을 굽어 볼 수 있는 최고의 명소입니다.

신화에 의하면 상아덤에서 가야산의 산신(山神)인 정견모주(正見母主)와 천신(天神)인 이비하가 내려와 서로 사랑을 하여 아들 형제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큰아들 뇌질주일은 대야가의 첫 번째 왕인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작은아들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윽고 상아덤 위로 주봉인 칠불봉(1,433m)과 뾰족한 정상부가 위용을 드러냅니다. 서성재를 지나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으로 올라갑니다